최근 대법원은 다수의 구성요소를 포함하는 백신 조성물 특허에 대한 침해금지소송 사건에서, 모든 구성요소를 한국에서 생산하여 수출하고 이를 외국에서 조합하여 특허 조성물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해당 조성물에 대한 특허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는 특허권의 속지주의 원칙 및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을 고려하여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하고, 또한 해당 조성물 완제품을 한국에 생산한 것이 외국에서 다른 회사가 임상 시험할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볼라 예외 조항이 적용되어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5. 5. 15. 선고 2025다202970 판결).
▶ 사실관계
원고 1은 "13개
혈청형의 폐렴구균 협막 다당류가 각각 운반체 단백질에 접합된 다당류-단백질 접합체를 포함하는 13가 면역원성 조성물" 발명에 대한 이 사건 특허의 특허권자이고, 원고 2는 이 사건 특허의 전용실시권자이자 상기 면역원성 조성물의
실시제품인 13가 폐렴구균 접합백신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국내 품목허가권자로서, 원고 1로부터 해당 접합백신을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다.
피고는 13가 폐렴구균 접합백신에 대해 연구 및 생산 준비를 마치고 러시아 제약회사와 상기 백신에 대한 라이선스 및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에 따라 피고는 각 13개 혈청형의 다당류-단백질 접합체가 개별적으로 포장된 13종의 개별 접합체 원액을 러시아 제약회사에 제공하였으며(이하, "실시행위 1"), 또한 이와는 별도로 13종의 개별 접합체 원액을 혼합하고 제형화하여 인체에 주입할 수 있는 약물이 담긴 주사기의 완제품 형태로 생산한 다음 이를 임상실험용으로 러시아 제약회사에 4차례 제공하였고(이하, "실시행위 2"), 러시아 제약회사는 이를 사용하여 러시아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여 백신에 대한 품목허가를 받았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
원고들은 피고의 실시행위 1이 이 사건 특허에 대한 직접침해 또는
간접침해를 구성하고, 피고의 실시행위 2가 이 사건 특허를
직접침해한다는 이유로 피고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특허권 침해금지의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가 임상시험을 위해 생산한 완제품 백신이 원고 특허의 보호범위에 속함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다.
먼저, 실시행위 1이 직접침해를
구성하는지와 관련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의 판단기준, 즉, (i) 국내에서 특허발명의 실시를 위한 부품 또는 구성 전부가
생산되거나 대부분의 생산단계를 마쳐 주요 구성을 모두 갖춘 반제품이 생산되고, (ii) 이것이 하나의
주체에게 수출되어 마지막 단계의 가공․조립이
이루어질 것이 예정되어 있으며, (iii) 그와 같은 가공․조립이 극히 사소하거나 간단하여 (iv) 위와 같은 부품 전체의 생산 또는 반제품의 생산만으로도 특허발명의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체로서
가지는 작용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 경우에는, 특허권의 실질적 보호를 위해 국내에서 특허발명의
실시제품이 생산된 것과 같이 볼 수 있다는 기준을 인용하였다(대법원
2019. 10. 19. 선고 2019다222782,
222799(병합) 판결).
상기 기준에 근거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3종의 개별 접합체 원액이 각각 면역원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조되었을 것이므로 이를 혼합하기만 하면 13가 면역원성이 발현될 것이고, 또한 이 사건 특허 명세서의 기재와
백신 분야의 통상의 지식에 비추어 보면 혼합 공정은 통상의 기술자에게 기술적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가 13종의 개별 접합체 원액을 생산한 것만으로도 국내에서 이 사건 특허발명의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체로서
가지는 작용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상태가 갖추어졌다고 봄이 타당하며, 따라서 피고의 실시행위 1이 직접침해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실시행위 2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경우를 규정하는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에서의 연구 또는 시험은 특허발명을 실시하는 주체를 위한 연구 또는 시험을 의미하는 것인 반면에,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이 사건 특허와 관련된 물건을 생산하고 피고가 아닌 러시아 제약회사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연구 또는 시험을 수행한 것이므로, 피고의 실시행위 2는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에서 규정하는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사건 특허에 대해 직접침해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 특허법원 판결
항소심에서 특허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의 특허권 침해금지 청구를 기각하였다.
먼저, 실시행위 1에
대하여 특허법원은, 원고와 피고가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13가
개별 접합체 원액의 혼합 공정이 극히 사소하거나 간단하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13종 개별 접합체 원액을 간단히 혼합하기만 하면 13가 면역원성이
구현되는 상태라고 볼 수 없으므로, 실시행위 1이 이 사건
특허에 대한 직접침해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특허법원은 13종 개별 접합체 원액이 모두 러시아로 수출되어
국외에서 완성품이 생산되었으므로 이 사건 특허에 대한 간접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실시행위 2에 대하여 특허법원은,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는 시험적 실시의 예외를 인정하여 기술발전 촉진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의 규정이고, 외국에서 의약품 품목허가를 취득하여 궁극적으로 상업적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상기 규정의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에 특허법원은 실시행위 2가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속하므로 원고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특허법원 판결과 결론을 같이 하고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먼저, 실시행위 1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2019다222782, 222799(병합) 판결에서 판시한 판단기준을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특허권의 속지주의 원칙과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을 고려하여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상기 기준에 근거하여, 대법원은 혼합 공정에서 13종 개별 접합체 원액의 투입량, 혼합비율, 혼합순서, 혼합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13가 면역원성이 구현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13종 개별 접합체 원액의 생산만으로도 이 사건 특허발명의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체로서 가지는 작용효과인 13가 면역원성을 구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피고의 실시행위 1이 이 사건 특허에 대한 직접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대법원은 특허권 속지주의의 원칙에 따라 간접침해에서 최종 제품의 "생산"이란 국내에서의 생산을 의미하므로 생산이 국외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는 간접침해가 성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였다.
끝으로, 실시행위 2에 대하여, 대법원은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는 발명의 보호와 발명의 이용 도모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규정이므로, 특허권자의 정당한 이익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연구 또는 시험의 목적인 실시행위 2가 특허권자 또는 전용실시권자인 원고들의 독점적·배타적 이익을 불합리하게 훼손하였다고 보기가 어려우므로, 실시행위 2는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경우, 즉 볼라 예외 조항이 적용되는 경우라고 판단하였다.